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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삶/엘로히스트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이 생명의 길

 

 

길은 처음에 누군가가 목적지를 향해 반복적으로 오고 간 흔적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처음 지나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조금씩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이치를 보아도 우리 영혼이 갈 수 있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이 땅으로, 이 땅에서 다시 천국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가시면서 만들어진 천국 길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단이 수하들을 이끌고 이 땅으로 와서 많은 영혼들을 미
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면서 만들어진 지옥 길도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방향을 잃고 헤매다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 길로 접어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목적지인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천국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천국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베드로가 본 환상이 주는 교훈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그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장 6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천국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행 10장 9~16절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는 어느 날 각양각색의 짐승들이 들어있는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대로 음식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던 베드로는 그 짐승들이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부정한 짐승이라는 생각에,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제가 이제까지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습니다.

이에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세 번이나 거듭하여 들려왔습니다. 이제껏 자신이 배우고 지켜왔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했던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꿈에서 깬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부정한 짐승을 먹는 이방인들까지도 정결케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려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말씀을 전하고 침례를 베푸는 장면이 뒤이어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도 간혹 베드로와 같은 잘못을 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을 더 내세웠을 때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었듯,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우위에 두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시고 정한 짐승만 먹을 수 있도록 율법에 정해주셨습니다(레 11장).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았고, 부정한 짐승을 먹는 이방인까지도 부정하게 여겨 그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규정된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전까지는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짐승이라 여겼어도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면 이후로는 그 말씀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는 자

성부, 성자, 성령 시대로 이어지는 6천 년 장구한 구속의 경륜을 세우신 하나님은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에서 이 땅까지 친히 오가시면서 천국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우리가 그대로 순종할 때 천국 가는 길로 올바르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을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는 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 14장 4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여기서 ‘어린양’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마지막 시대 구원받을 성도들은 재림 예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갑니다. 성경은 그들을 자기 생각과 경험을 내세우는 고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전한 자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인도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계 7장 16~17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성경은 어린양이 친히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양의 인도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어린양이 인도하시는, 생명수 샘이 있는 그곳이 곧 천국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이신 재림 예수님을 따라 도착한 생명수 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인해봅시다.

슥 14장 7~8절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생수, 곧 생명수가 사시사철 솟아나는 샘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성경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갈 4장 26절 참고). 어린양 되신 재림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곳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품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께서 안식일이라는 길을 만드셨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 천국으로 향해야 하고, 유월절이라는 길을 만들어두셨다면 유월절을 지킴으로 천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새 언약의 모든 법도를 세우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수의 샘 어머니께로 인도해주셨다면 반드시 어머니를 믿음으로써 그 길을 따라 천국으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어머니를 안 믿고 유월절이나 안식일만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합니다. 이는 율법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갈 3장 24절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옛 언약의 율법이 당시 사람들을 초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새언약의 율법은 우리를 누구에게로 인도하겠습니까? 바로 성령 시대의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입니다.

이지러지고 파손된 새 언약의 율법을 재림 예수님께서 복구하신 이면에는 자녀들이 생명수 샘을 올바르게 찾아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와 영원한 천국에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뜻이 있습니다. 인류에게 다시 한 번 새 언약의 진리를 허락하심으로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 오는 길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몽학선생에 불과한 율법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하늘 어머니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어린양의 실체로 이 땅에 오신 안상홍님께서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여호수아는 모세를, 엘리사는 엘리야를, 나는 어머니를 따른다’는 내용의 친필 기록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하늘로 올리시기 전, 마지막 당부도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생명수의 근원이신 어머니께 순종하여 천국까지 무사히 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 어머니의 말씀을 다 들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를 통해서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 21장 8~12절 “…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여종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본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들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하시면서 사라의 결정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하도록 판결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내 사라는 당연히 우리 하늘 어머니를 표상합니다(갈 4장 21~31절 참고). 사라의 말을 다 들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어머니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대로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로 가는 가장 올바른 방도입니다.

예루살렘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수의 샘이신 하늘 어머니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면 영원한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어머니를 섬기지 않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파국을 맞게 됩니다(사 60장 12절).

히 4장 6~13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성경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안식이 예비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는 사람은 결국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져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를 하늘 어머니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성경 속 수많은 증거의 말씀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하늘 어머니에 대해 증거하고 성경에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구원의 말씀을 깨닫고 천국 길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일깨워주신 하늘 어머니를 믿지 않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 어머니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버지께서는 새 언약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재건하셔서 생명의 길이요 생명수 샘이신 어머니께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길 끝에 있는 최종 목적지 천국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애타는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삼위일체로 보면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의 신부는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며 인류를 천국 길로 불러주시는 모습을 사도 요한이 계시로 보고 기록한 장면입니다. 오늘날 성령 시대에는 “오라”고 부르시는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값없이 생명수가 허락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성문화되지 않았던 때의 불문법에서부터 돌비에 기록된 의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워진 새 언약의 진리까지 모두 하늘 어머니를 증거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지나 지금까지 하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6천 년의 기나긴 시간의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그 끝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 거절했던 베드로의 과오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겠습니다” 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천국 길 외에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더 좋은 길이 있지 않을까 하여 다른 길을 기웃대다가는 사단이 만들어놓은 덫에 빠지고 맙니다.

아버지께서 희생으로 닦아놓으신 생명의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면 영원한 천국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아버지께서 기다리실 아름다운 천국까지 한 사람도 낙오되지 말고 천국 길을 따라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환대를 받으며 하늘 본향에 입성하는 시온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이치를 보아도 우리 영혼이 갈 수 있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이 땅으로, 이 땅에서 다시 천국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가시면서 만들어진 천국 길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단이 수하들을 이끌고 이 땅으로 와서 많은 영혼들을 미
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면서 만들어진 지옥 길도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방향을 잃고 헤매다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 길로 접어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목적지인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천국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천국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베드로가 본 환상이 주는 교훈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그 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장 6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천국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행 10장 9~16절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는 어느 날 각양각색의 짐승들이 들어있는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대로 음식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던 베드로는 그 짐승들이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부정한 짐승이라는 생각에,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을 제가 이제까지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습니다.

이에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세 번이나 거듭하여 들려왔습니다. 이제껏 자신이 배우고 지켜왔던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했던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꿈에서 깬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부정한 짐승을 먹는 이방인들까지도 정결케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려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말씀을 전하고 침례를 베푸는 장면이 뒤이어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도 간혹 베드로와 같은 잘못을 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을 더 내세웠을 때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었듯,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우위에 두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시고 정한 짐승만 먹을 수 있도록 율법에 정해주셨습니다(레 11장).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았고, 부정한 짐승을 먹는 이방인까지도 부정하게 여겨 그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규정된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이전까지는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짐승이라 여겼어도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면 이후로는 그 말씀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는 자

성부, 성자, 성령 시대로 이어지는 6천 년 장구한 구속의 경륜을 세우신 하나님은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에서 이 땅까지 친히 오가시면서 천국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우리가 그대로 순종할 때 천국 가는 길로 올바르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을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는 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 14장 4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여기서 ‘어린양’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마지막 시대 구원받을 성도들은 재림 예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갑니다. 성경은 그들을 자기 생각과 경험을 내세우는 고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전한 자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인도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계 7장 16~17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성경은 어린양이 친히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양의 인도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어린양이 인도하시는, 생명수 샘이 있는 그곳이 곧 천국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이신 재림 예수님을 따라 도착한 생명수 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인해봅시다.

슥 14장 7~8절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생수, 곧 생명수가 사시사철 솟아나는 샘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성경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갈 4장 26절 참고). 어린양 되신 재림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곳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품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신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께서 안식일이라는 길을 만드셨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 천국으로 향해야 하고, 유월절이라는 길을 만들어두셨다면 유월절을 지킴으로 천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새 언약의 모든 법도를 세우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수의 샘 어머니께로 인도해주셨다면 반드시 어머니를 믿음으로써 그 길을 따라 천국으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어머니를 안 믿고 유월절이나 안식일만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합니다. 이는 율법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갈 3장 24절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옛 언약의 율법이 당시 사람들을 초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새언약의 율법은 우리를 누구에게로 인도하겠습니까? 바로 성령 시대의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입니다.

이지러지고 파손된 새 언약의 율법을 재림 예수님께서 복구하신 이면에는 자녀들이 생명수 샘을 올바르게 찾아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와 영원한 천국에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뜻이 있습니다. 인류에게 다시 한 번 새 언약의 진리를 허락하심으로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 오는 길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몽학선생에 불과한 율법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하늘 어머니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어린양의 실체로 이 땅에 오신 안상홍님께서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여호수아는 모세를, 엘리사는 엘리야를, 나는 어머니를 따른다’는 내용의 친필 기록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하늘로 올리시기 전, 마지막 당부도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생명수의 근원이신 어머니께 순종하여 천국까지 무사히 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 어머니의 말씀을 다 들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아브라함 가정의 역사를 통해서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 21장 8~12절 “…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여종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본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들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하시면서 사라의 결정을 따라 모든 일을 행하도록 판결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내 사라는 당연히 우리 하늘 어머니를 표상합니다(갈 4장 21~31절 참고). 사라의 말을 다 들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어머니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대로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로 가는 가장 올바른 방도입니다.

예루살렘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수의 샘이신 하늘 어머니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면 영원한 천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어머니를 섬기지 않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파국을 맞게 됩니다(사 60장 12절).

히 4장 6~13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성경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안식이 예비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는 사람은 결국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져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를 하늘 어머니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성경 속 수많은 증거의 말씀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하늘 어머니에 대해 증거하고 성경에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구원의 말씀을 깨닫고 천국 길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일깨워주신 하늘 어머니를 믿지 않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 어머니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버지께서는 새 언약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재건하셔서 생명의 길이요 생명수 샘이신 어머니께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길 끝에 있는 최종 목적지 천국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애타는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삼위일체로 보면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의 신부는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며 인류를 천국 길로 불러주시는 모습을 사도 요한이 계시로 보고 기록한 장면입니다. 오늘날 성령 시대에는 “오라”고 부르시는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값없이 생명수가 허락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성문화되지 않았던 때의 불문법에서부터 돌비에 기록된 의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워진 새 언약의 진리까지 모두 하늘 어머니를 증거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지나 지금까지 하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6천 년의 기나긴 시간의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그 끝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 거절했던 베드로의 과오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겠습니다” 하고 순종하여 천국에들어가는 하나님 자녀가되어야 하겠습니다.